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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일본의 개국신화는 단군과 가야신화가 모태

관리자 | 2010-05-21 15:21 | 조회 4271





[인터뷰] 일본의 개국신화는 단군과 가야신화가 모태



  홍윤기 교수 / 일본센슈대학 대학원 문학박사
 
  출처:강현주  news@kookhaknews.com

일본 속의 백제 유물, 유적과 <일본서기> 등을 중심으로 한 철저한 문헌고증으로 고대 한일관계와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천손 문화를 38년간 연구해 온 한국외대 홍윤기 명예교수가 최근 <백제는 큰 나라>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는 일본 왕실에 고대 한국인들의 발자취가 뚜렷하다고 한다.



고대 한일관계를 연구하게 된 동기는


일본 센슈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기 오래전인 1970년대 초에 일본 최초의 와카(和歌, 詩歌)가 백제에서 건너간 왕인 박사가 쓴 ‘난파진가難波津歌’라는 사실을 밝혀내면서부터 일본 고대 역사 연구를 하게 되었다.



고대 한국과 일본은 언제부터 교류했는지


서기 전 3세기부터 시작해 5세기 이후 선박기술이 발달하면서 대규모로 이동했다. 일본의 여러 저명사학자도 “일본 천황가는 고대 한반도로부터 말을 타고 건너온 기마민족”이라고 주장해왔다. 에가미 나미오 도쿄대 교수도 “2천 년 전 한반도 북부와 만주지방에서 기마민족이 규수로 건너와 일본인의 지배층을 이룬 덴손(天孫, 천손)족”이라고 했다.



일본의 개국신화가 단군과 가야 신화를 바탕으로 했다는데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신화는 지배자의 기원과 계보를 말해 주는 것으로 지배의 정통성과 근거를 밝혀주는 성격을 갖고 있다. 천손 강림하는 단군신화와 가야 김수로왕의 구지봉 설화를 뒤섞어 놓은 것이 일본 개국신인 ‘니니기노미코토’의 신화이다. 우리는 환인이 환웅에게 세 가지 보물인 천부삼인을 안겨 풍백, 우사, 운사 세 명의 직능 신을 딸려 보내서 단목(檀木)옆에 내려가 나라(조선)를 개국한다. 일본은 고목신(高木神)의 외손자 니니기노미코토가 천조대신의 명을 받아 삼종 보기를 갖고 오부신(일본 신화의 다섯 신)이 따라 지상으로 내려온다. 고목신이라는 신의 이름과 단군이라는 이름 역시 나무와 관련되어 현저하게 유사하다. 붉은 보자기에 싸여 산으로 내려오는 것은 가야 김수로왕과 똑같다. 또한 산의 이름이 구지(龜旨)와 ‘구시후루’로 ‘구시’가 동일어이다. 구시후루 산 위의 봉우리를 ‘소호리’라고 하는데 이는 우리말에서 왕도(王都)인 서울을 뜻하는 말이다. 신라의 왕도 서벌徐伐 혹은 백제의 왕도 소부리와 동일어이다.



왜 일본에 고대 단군신화나 가야신화가 전해졌는지


신화와 설화의 이동은 민족이 이동했기 때문이다. 왕인이 5~6세기 문자를 가져가기 전까지 일본은 문자가 없었다. 국가의 형성과정에서 일어난 모든 신화와 전설, 이런 것들이 민족이 이동함으로써 전해져왔고 구전되어 오면서 뒷날 일본 역사로 쓰여진 것이다.



<일본서기>에도 이를 뒷받침할만한 기록이 있다고 하는데


<일본서기>에 10대 수인천황 때 신라의 천일창 왕자가 <곰의 신단>과 옥과 검, 거울 삼보(三寶)를 가져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곰의 신단은 단군의 어머니인 웅녀신을 받들어 제사지내던 신단이라고 본다. 유명한 사학자인 미즈노 유 교수는 저서 <천황가의 비밀>에서 “천일창 왕자의 삼보는 금속기 문화를 지닌 한반도 도래인의 대장간 기술민 집단이 가져온 신라계 신보였다.”고 본다. 이 신보를 갖춰 비로소 주권의 표상으로서 천황가의 ‘삼종의 신기’가 성립되었다.



일본 천황가가 한국인이라고 하셨는데


일본 천황가는 초기에는 신라 혹은 가야계였다가 후에 백제계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815년에 쓰여진 왕실족보인 <신찬성씨록>에는 구다라(백제百濟)대왕이라 불린 조메이 천황의 조부 30대 비타쓰 천황이 백제왕족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메이 천황은 구다라강(백제강)이 흐르는 강변에 구다라궁(백제궁)을 짓고 살았다. 일본 아키히토 일왕도 지난 2001년 “간무(781~806)천왕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역사책 <속일본기>에 쓰여 있어 한국과의 혈연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천황가의 신상제(新嘗祭)에서는 일본의 국신 천조대신(天照大神)이 아니라 백제 신을 부르는 한신인장무(韓神人長舞)를 추며 축문에서 “아지메, 오,오,오,오 오게”라는 신라말을 쓴다. 일본인은 못 알아들어도 우리나라 사람은 뜻을 안다.



누구나 천손이라는 한국의 천손 문화와 일본 천황문화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우리 천손 문화의 바탕인 홍익정신은 어떤 의미에서 고대의 상당히 진보된 민주주의이다. 일본에서는 지배층, 천황가의 문화로 한정되었다. 19세기 말부터의 제국주의가 강력해진 일본에서 일본인들은 인간신(人間神) 천황의 백성으로 관념화되었다.



군국주의 일본에서는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을 주장했는데



군국주의자들은 한국사를 압도하려고 ‘기원 2600년’이라고 역사를 6백 년 조작하여 늘였다. 시대적으로는 간지干支(60갑자)를 두 번 올린 것도 있고 네 번 올린 것도 있다. 일본학자들도 제1대~9대 천황은 조작이라고 이미 비판했다. 일본의 뿌리가 한국에 있다고 연구한 학자 중에는 일본 군국주의 세력이 압박하니까 군국주의와 영합한 학자도 있다. 예를 들면 ‘일본’이란 국호는 서기670년 이후에나 나오는데 5~6세기에 한반도에 ‘임나일본부’가 있었다거나 ‘칠지도’ 자체에는 백제왕이 왜왕에게 내려준 것으로 된 것을 일본서기에는 (윗사람에게) 헌상하였다고 했다.



고사기 일본서기는 처음부터 왜곡되었나


처음 백제왕족 " 안말려"가 구전된 것을 받아썼던 고대 기록들은 왜곡되지 않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대에 와서 본격적으로 왜곡됐다고 추찰할 수 있다. 일본은 1592년 임진왜란 전후와 군국주의가 기세를 올리던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에 백제군, 백제강 등 행정지명을 비롯해 그 이전에 한일관계에 있어 일본에 불리한 것을 모두 없애고 바꿔치기 했다. 1592년 당시는 종이도 귀하고 역사책도 왕실과 왕족만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왜곡하기 쉬웠을 것이다. 일본학자들도 더러 잘못되었다고 지적하지만 언제 본격적인 역사 왜곡이 일어났는지 말한 학자는 없다.



고대 한국의 문화전파 연구에 대한 일본인의 반응은


교토, 오사카, 북 규슈우 등에서 내가 강연할 때마다 4백 명 가까운 많은 사람이 왔다. 특히 40대 이상의 관심이 많은데 누구나 제 조상의 핏줄기는 속이지 못하는 것 같다. 도쿄대학의 인류학 교수 하니와라 카즈로 교수는 “한반도의 일본 도래인은 선주민의 약 30배가 넘는 3백만 명”이고 “야요이 시대(서기 전 3세기~서기 후 3세기)로부터 서기 700년 경까지 약 1천 년 동안 일본인의 70~90%는 한국으로부터 건너온 사람”이라고 밝혔다. 오랫동안 친분을 쌓은 학자, 문학인 수백 명이 “사실 우리 선조가 백제인”이라고 스스로 밝혔다. 제대로 역사를 아는 사람은 바로잡히길 바라고 있다.



앞으로 한일관련 어떤 연구가 필요한가


우리 국민이 한일관계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야만 한다. 일본의 양심 있는 원로학자들이 세상을 떠나면 사실 걱정이다. 일본의 젊은 학자 중에서 양식 있게 열심히 하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 국수주의자들이 쓴 후쇼사 역사교과서 같은 경우 역사를 자꾸 숨기고 조작하고 있다. 일본 국보1호 보관반가상, 구다라 관음상 등 한반도에서 건너간 것이 일본 고문서나 전래경위에 나타남에도 일본에서 만들었다고 허위 선전한다.



고대사연구가 앞으로 한일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숨기려는 사람이 많은데 제대로 알림으로써 한일 친선이 바르게 이루어진다고 본다. 결국 한국과 일본은 한 뿌리이다. 나라는 다를지라도 피는 같은 줄기이다. 역사를 올바로 인식하여 가깝고도 먼 나라가 아니라 가깝고 가까운 나라가 되어야 한다.
                   



홍윤기/ 한국 외대 영어과 졸업, 일본 센슈 대학 대학원 문학박사 학위취득, 일본 센슈 대학 겸임교원, 현재 한국외대 {일본과 문화]교양학부 담당교수, 한일국제왕인학회 회장.